《얄팍해서 더 반짝이는 믿음(Midum)의 속성을 모아》
2021년 월간미술 12월호 UP-AND-COMING ARTIST
2021년 12월
월간미술 조현아 기자
“앗 조각상 타이어보다” 끝 단어가 생략된 이문장은 김슬기가 명함 대신 제작한 스티커의 문구이자 근과거 인쇄매체의 양식을 차용한<헤라-오늘>(2018) 속 카피 배너이기도 했다.이제는 그 회사보다 더 유명해진 광고카피 "앗! 타이어 신발보다 싸다"는 작가의 영상에서 조각상의 금전적 가치를 짧게나마 상기시키는 말로 바뀌었다. 이렇게, 그는자신의 이름같이 (김슬기의 SNS 계정명 'toomanysulkies'가 대변하듯) 너무 흔하고 당연한 나머지 고찰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무엇'을 시각적, 언어적으로 패러디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김슬기는 지난 2년간 자신의 영상작업에 등장하는 요소를 접착제 없이 결합될 수있도록 디자인한 아크릴 조각으로 구현하거나 컴퓨터자수를 놓은 의복을 여러 번 변형시키는 과정을 거쳐 작업의 밀도와 전시의 서사를 쌓았다. 중심 내용은 같으나 지향점이 달랐던 개인전 <SF 산신할머니>와 <Chunky Totem Series>는 여러 형태의 레이어가 쌓여 '조악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이렇게 말하는 전시다. '딱 보면 가짜인거 모르겠어?"
그 중, 영상 <SF 산신할머니>는 진짜인 척하는 가짜를 집요하게 재현해 세상에 굴러다니는 가짜들의 더미에 녹아있는 오인된 인식과 믿음을 지시하는 김슬기의 작품을 하나로 엮는다. 영상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나 B급 컬트무비, 비약적인 줄거리만 남은 '아시아적’ 전설 등, 미디어에서 반복되어온 내러티브와 집단의 편향적 사고를 드러내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김슬기는 작품에 대모산신그룹과 결탁한 '휴먼제록스 컴퍼니'를 등장시켜 복사된 몸에 프로그래밍된 기능을 심는 세계를 그린다. 이 사회에서 스스로 점지받은 천재라고 믿었던 1995년생 무당이 엉겁결에 영웅이 되고 끝내 자신의 능력이 주입된 것이었음을 깨닫는 플롯은 미디어의 서사적 관습을 타파할 단초를 그러모은다. 이때 탁나비가 산신할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은 모계 전승 시스템에 다름 아닌 세습무(世襲巫)의 신력을 기계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며, 이성애적 가족 구성의 권위를 걷어내고 문화에 잔존해온 비논리적 사고방식을 풍자한다. 더불어 작품에는 구전 설화구조와 매스미디어의 영상 재생방식이 짜깁기된 '이면용 이야기' 등의 가짜 전설이 갑작스러운 광고처럼 삽입되어있다. 그 자체로 패러디인 탁나비 스토리와 사이사이 등장하는 가짜 전설은 가짜뉴스와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현상을 작품에 정박시킨다.
물론 <SF 산신할머니>는 서사의 심도가 얕고, 세계관의 진전은커녕 그 성립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생각의 실마리만을 쥐여줄 뿐 어떠한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결말 없는 <Quick Shaman>도 마찬가지다. 일본 3D 모델링 메타버스 플랫폼의 프로그램으로 선녀와 일본 망가 캐릭터의 전형을 합성한 '퀵리포터'는 이야기의 시작점에만 맴돈다. 그러나 작가가 샤머니즘의 꾸준한 인기 요인을 빠른 속성이라 본 것처럼,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신속함과 맥락 없는 전개는 행운도 간편히 얻고자 하는 오늘의 모습과도 맞닿는다.
영상에서 패러디한 주제들은 두 번째 개인전 제목이자 연작의 제목 <Chunky Totem Series>에서 증폭된다. 값싼 혼합매체로 전통적인 '느낌'만을 갖춘 재현된 무구(巫具)는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는 무속용품의 저렴한 신비로움을 따라함으로써 환상에 균열을 낸다. 진짜보다 더 새것 같은 <Shinjangcal>(2020), <Poseokjeong의 한조각>(2020) 등은 그 외형 외에도 장난 같은 명명법을 통해 우리가 이물감을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을 노출한다. 작가는 'K-문화' 먹방을 Mukbang이라 표기하거나, 도로명을 영어권 외국인을 위해 '친절히 표기하는 행동을 조각에 적용함으로써 실소를 유발한다.
지금은 조각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김슬기는 음각의 영역을 다시 보고 있다. 그에게 음각이란 물리적으로 비워진 부분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 부유하고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이상하지만 견고한 믿음의 편린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