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로 가득 찬 주머니를 상상해보자. 바람 소리가 들린다. 공기가 주입된다. 주머니는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부풀어 오른다. 거대해진 주머니는 비어보이는, 혹은 다른 공기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을 밀어낸다. 주머니 안과 밖의 공기는 얇은 면을 경계로 저항한다. 부푼 공기 주머니는 닿아간다. 푹신하게 잡아먹힌다. 일정 범위를 초과한 에어백의 팽창은 공간을 압도하고, 서로의 거의 모든 표면을 공유한다. 그 순간 자동차와 운전자 사이의 공간은 에어백의 부피만큼 가시화된다.
김슬기의 조각들은 평면에서 도출된다. 단면들을 겹쳐 만들어 낸 단차로 외곽을 이루거나, 평면의 판재에 다른 매체가 결합된다. 하나의 선을 위한 판재들은 조밀하고 다부진 형태로 서로 밀착되어 있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금속 재질의 부속들은 축을 중심으로 평면의 판재들을 입체로 전환시킨다. 김슬기는 조각이 외부의 세계와 접촉하는 면을 또 하나의 레이어로 인식하고 가득 차 있는 공간과 비어 있는 공간을 구분짓는 경계로 상정한다. 이때 구분된 두 공간은 양각과 음각으로 치환된다. 이는 형체의 능선을 기준으로 조각을 구축하는 작업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정된 레이어는 조각이 인식되는 영역을 가변적으로 전환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김희주의 작업은 거듭하며 형상을 찾아간다. 스크린 프린팅의 원리 혹은 구조는 분판이다. 낱개의 판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잉크를 밀어내며 한 면을 만들어낸다. 걸어온 발자국마다 잉크가 남는다. 현재의 운동성은 과거에 흔적을 남기고, 또 그 앞은 비어있게 된다. 동양화의 발색은 중첩의 결과다. 색을 모으고 가두기 위해 수행적 과정을 동반한다. 판화에서 그림으로, 또 이 형상에서 저 형상으로 연속적인 시차가 발생한다. 일련의 과정들은 ‘장지’라는 흡수체적 대지 위에서 더 모호해진다. 김희주는 에어백 전시에서 과거에 사용하지 않은 데이터의 레이어에 대지를 부여한다. 숨겨지고 삭제되었던 레이어들은 이 전시를 통해서 개별적 존재감을 획득한다. 파생된 이미지들은 갤러리 전시장 벽면과 전시장 벽면에 돌출시킨 액자들에 기생한다.
페스츄리의 김슬기와 김희주는 전시 Air-bag의 프로젝트로 작업과 교신에 관한 실험 [AJAX]를 수행한다. 웹 개발 통신 기술 AJAX(Asynchronous Javascript And Xml)에서 모티브를 얻은 [AJAX(비동기식 합동의 작품 의뢰 교환, Asynchronous Joint And eXchange)]에서, 김슬기와 김희주는 비동기적으로 각자의 프레임을 제작하고 자신의 액자 안에 들어갈 작업을 서로에게 의뢰한다. 두 작가는 클라이언트와 작업자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클라이언트로서 제안서를 (임의의 전송 주기에 따라) 작업자에게 전송하고, 작업자로서 클라이언트의 프로토콜에서 가변 영역을 찾아 자신의 변수를 기입한다. 서로가 제시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의뢰된 제작품은 클라이언트에게 전송되고, 액자와 제작품은 결합한다. 각자의 프로토콜에 기반한 액자와 제작품은 전시라는 형식으로 종결된다.
고착된 레이어의 프로토콜에서 숨어있는 가변 레이어를 발견한다. 잠재된 레이어의 작동 조건과 작동 방식은 두 사람이 각기 다르다. 또한 두 사람의 작품에서도 변칙으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