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도시의 분수1여의도의 분수를 본 러시아 농민의 마음
2022년 5월 14일 (토) 오전 12:55
큐레이터 O와의 메일 중

살 게 있어서 더 현대 서울에 갔다.

거대한 홀 양쪽에 사선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약간의 설렘과 불안함이 느껴진다.
투명하고 가파르게 최상층까지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오르다 보니 윙윙 울리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음질이 안 좋아?
사방에 울리는 음악 소리는 물속에서 노래 부르는 것처럼 꽉 막혀있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다보니 천장에서 가수 세 명이 나와 백화점의 잠재적 구매자들을 향해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러시아 황궁에 쳐들어간 농민처럼 기분이 묘했다.

나를 위해 노래도 불러주다니, 역시 돈이 좋구나!

지상에 강림한 대천사들이 아리아를 선사하듯 가수들은 천장의 유리에 투과된 빛을 등진 채 you raise me up과 같이 상당히 성스러운 팝송과 뮤지컬 갈라 몇 곡을 불러주었다. 노랫말들은 지상에 내려오다가 공중에 흩어져 윙윙거리는 성스러운 먼지만 느낄 수 있었다.

느낌만 주는 거지..

그 밑으로는 거대한 이중 분수가 물줄기를 끌어다가 퐁퐁퐁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이행성의 생명체처럼 보였다.

대체 저 나무는 어떻게 저기에 심어진 거야?

'나는 알아서 살 테니까 네 걱정이나 해'

분수 구조물 위에 심어진 나무를 걱정할 필요도 없이 세련되고 윤택한 모든 것들이 알아서 나무를 키워내고 있었다.

테라리움처럼 잘 짜인 여기에선 내가 걱정할 게 없다.

로비층으로 이어진 분수의 아랫단에는 사람들이 비둘기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위에서 보면 그 광경은 자이로드롭에 사람들이 꽉 채워 앉아있는 것 같았다.

다들 어디로 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