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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6일
어린 시절의 비디오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왜 나는 어릴 적 영상이 없나 궁금했다. 분명 사진은 꽤 많은 편인데 말이다. 그래서 엄마를 추궁하기로 했다. 왜 우리의 가정에는 캠코더가 보급되지 않았나. 엄마는 그럴 때마다 우린 가난해서 그런 거 모른다라고 대답한다. 아는 작가에게 물어보니 비디오를 디지털 파일로 복원할 수 있다고 하길래 어릴 적 재롱잔치 비디오를 복원시켰다.
그런데 엄마가 분명히 나 어렸을 적에 귀여웠다고 말했는데, 귀엽기는 개뿔 눈썹이 시커멓고 팔다리만 죽죽 길고(나는 또래에 비해 키가 일찍 자란 편이었다) 빼빼 마른 징그러운 아이가 세상 무심한 표정으로 묵묵히 다음 춤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어떤 즐거움과 사랑스러움도 없이 '나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게다가 칼각과 칼박으로 정말 여간 잔망스러운데 없이 하나도 앙증맞지 않게 팔다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웅변대회(주로 주제는 통일과 환경보호)에서 나의 어린 음성을 기대하며 재생해 보았으나, 갓 북한에서 넘어온 듯한 패기 넘치고 박력 있는 옛 서울말과 프로파간다 어조의 콜라보에 그냥.. 그냥 어린 나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얘는 대체 왜 이렇게 의젓한 거지?
난 꺼버렸다. 그리고 잊기로 했다. 이 정도의 어른스러움과 건조함으로는
우리 아빠가 이동국이래도 슈돌에 못 나간다.
하여튼 욕심만 많아가지고 남 이겨먹으려는 심보는 타고났다. 주변에 있는 유치원 동기들의 사랑스러움과 어린 애다움에 대조되어 난 마치 소녀가장처럼 보였다.
한편,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귀엽지 못한 어린 나의 타고나지 못한 애다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시절의 기록은 필연적으로 부모의 관심과 재력, 미디어 기술에 대한 적응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우리 집만 해도 첫째 아이이며, 아빠가 중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나기 전인 언니의 유년 시절은 거의 일주일 단위로 사진이 가득하다. 이년만큼의 분량이 없는 대신 내가 언니보다 이년은 더 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질투가 나진 않는다. 다만 이런 전적으로 부모의 의지에 달려있는 유년시절의 아카이브는 가정 내외의 여유와 특정 자식에 대한 애정의 무게에 따라 그 양이 달라진다.
전에 작가들과 함께 했던 전시에서는 어린 시절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이 적은 것이 남아 선호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되돌릴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을 상속받는 일, 나는 절대 볼 수 없는 나의 어린 시절을 부모의 시선에서 다시 보는 것, 나는 이것이 사랑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육아일기를 올리는 요즘, 이 계정의 상속 과정에 대해 생각한다. 어린 시절이 온 미디어에 기록된 유명 연예인 자녀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그리고 유명세의 상속.. 이제 모든 것은 자산이 되고 상속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