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Recipe
켜켜이 쌓인 조각들, 포크로 한 번에 찍어버리기
2022년 9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16기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 작가노트
작년 봄부터 나는 애플워치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하루의 루틴 삼아 산책을 시작했다.
사천교에서 성산교로 이어지는 개천을 걷다 보면 무수히 많은 콘크리트 교량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새 교량은 산책이 구간이 길어짐에 따라 이를 축하하는 기념비처럼 서있었고, 회갈색의 콘크리트 표면 위에 흘러내린 갖가지 색의 물줄기들은 겹겹이 쌓인 페인팅처럼 보였다. 건물을 짓거나, 부수거나, 보수하는 현장을 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했다. 롤크러셔로 철근을 끌어내어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과자집을 부수는 것 같다. 애써서 지은 집을 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집과 공간이라는 건 결국 어떤 경계선에 의해서 성립될 뿐이다. 공간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결국 공간과 터전은 내부에서 어떤 의지로 지탱하는지에 달려있다. 마치 내부 구조의 튼튼함이 전체 형상의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조각처럼.
현재의 편의를 위해 겹겹이 쌓인 도시의 흔적들. 역사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듯 레이어의 연원을 쫓다 보면 도시의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흔적들은 사람들을 잊은 채 그리고 잊힌 채로 무늬로 남아 도시에 있다.
나는 더는 추적할 수 없거나 추적할 필요가 없는 무늬들을 보며 근거 없는 향수와 구조적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얼기설기 엉켜져 있는 도시의 흔적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다시 조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