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교훈적 민담
2019년 11월 13일 오후 11시 47분 쓰고 2024년 11월 03일 오후 4시 56분 글을 조금 수정함


엄마는 가끔 나에게 티비나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를 두서없이, 반복해서 해준다. 내가 고등학생이였을 땐 한참 인간극장이나 토크쇼에서 묘사되었던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를 들려주었고, 요즘은(2020년-) 김창완 아저씨의 라디오 사연이 주 레퍼토리다. 사람이 좋다 같은 휴먼 다큐가 엄마의 이야기 보따리 타겟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엄마는 서울대를 나와 인생이 잘 안 풀린 사람들의 얘기를 나에게 자주 한다. 사실 그 얘기 시리즈들을 듣기 시작한 것이 대학 입학 전부터였는지 입학 후였는지 기억은 안니지만 서울대를 졸업하고 나니 비수가 되어 뇌리에 깊게 남는 것이다.
엄마의 시리즈 중 한 가지에 대해 얘기하자면, 빵집 아저씨의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서울대를 졸업한 빵집 아저씨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빨간 줄이 그어졌고 그 이후에 고시와 취업에 모두 실패하였으며
결국에는 빵집을 차리게 되었는데 공부는 잘했지만 빵 만들기에는 소질이 없어서 제빵 실기 시험에서 애를 먹었다는 얘기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민담 같은 그 이야기는 요즘 나의 머릿속에서 쟁쟁 울려 퍼진다.
오늘은 엄마가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가는 길에 연세대를 나온 초등학교 동창의 얘기를 해줬다. 그 아저씨는 연세대를 나왔지만 담배를 팔고 있다고. (접속사 하지만을 사용한 것은 의도적이다. 나는 연세대생-수제담배 가게 사장 노선에서 인생의 하락세를 뜻하는 엄마의 뉘앙스를 강하게 확신한다.)
동창 아저씨들이 그 아저씨의 수제 담배를 가끔 팔아주는데 사면서도 수제 담배를 마음에 안들어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 아저씨는 똑똑해서 딸들이 다 외고를 나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울적해진 나는 작가 준비생에 준하는 나의 처지를 한탄하며 스스로 한심하다고 했고 엄마는 자신의 노력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 부끄러울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훗날 내 친구들이 마트에 가면서 자식들에게 나의 하락세를 교훈 삼아 얘기하는게 무서워서
얼른 성공해야겠다
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