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글로벌하게 할렐루야
2023년 6월 13일


출근 중에 왕십리역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지하철 광고판에 작가 하상욱의 광고가 보였다. 무슨 광고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뭐 대충 책 광고였겠지. '글로 돈 버는 글로 벌 작가 하상욱'이라 자기소개란에 쓰여있었는데, 난 그걸 보고 '죄와 벌' 패러디인가 한참 생각하다가 '글로 벌'이 global인 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글로벌하면 생각나는 것은, 초등학생 시절 교육 전반과 사회 전반을 휩쓸던 글로벌 열풍이다. 물론 당시 나의 사회는 집과 학교뿐이었기에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는 정말로 글로벌 인재 양성에 총력을 다했다. 여기저기 글로벌을 위해 노력했다. 그때 유행했던 말로는 '지구촌'도 있다. 마샬 맥루한이 1988년 처음 사용한 단어로 global village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하나가 된 지구마을. 난 아직도 지구촌이라는 말이 낯설다.

지구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다.

1. 에버랜드 지구마을
에버랜드의 어트랙션으로 지금은 폐장되었다. 그런데 검색 중에 깨달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사실 에버랜드의 지구마을이 아니라 롯데월드 신밧드의 모험 막판에 나오는 인형들이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밧드의 모험 놀이기구가 구간을 모두 이동한 후, 다시 탑승장으로 이동할 때 경로 양 옆에 호두깎이 같은 인형들이 있었다. 그 인형들의 복식이 세계인의 전통의상이었고 그걸 보고 지구마을이라고 생각했던 것.

2. 목우촌
--촌이라는 단어 자체가 예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런데 협동조합과 동시에 다단계나 사이비 가맹점 같은 느낌도 좀 든다. 자매품은 신앙촌 상회

3. 지구촌 교회 목사님의 할렐루야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인 오랜 기억이다.
큰 이모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언니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엄마는 종종 나와 언니를 이모네 집에 보내 여러 교회 행사에 참여하게끔 했다. 그때 아마 내가 1학년이 안 됐을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 간 여름 성경학교에서 밤새 진행되는 예배에 난 코피가 터졌다. 난 상습적인 코피 찔찔이였는데, 자정 너머 숙소에 누워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이 행사는 뭘까 생각했었다. 피맛을 상상해 보시라. 역시 오감이 함께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기묘하다고 생각하며 기도로 넘어가는 코피의 짭짤함을 느끼고 있었다.
교회 행사 특히 주로 예배에서 전도사나 목사들이 보여주는 일종의 의식은 유교에 가까운 무교의 집에서 태어난 나를 흥분시키는 일종의 주술이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눈을 감고 지구를 받치는 아틀라스처럼 팔을 하늘로 뻗거나, 무릎 옆 바닥을 짚고 하는 다양한 기도 방식의 변주는 그 변주의 다양함이 마치 성령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때 하나님의 갓 입문한 어린양들만이 촌스럽게 두 손 모아 기도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까지 코흘리개 아이들을 초록색 퍼즐로 된 강당에 앉혀 놓고 하나님께 제일 먼저 간택받기 위해 할렐루야를 부르짖는 그의 모습. 전도사인지 목사인지 장로인지 알지 모를 그 양반의 부르짖은 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무교인에게 새롭고 좋아 보이는 교회 내의 직책들(이름만). 나는 그 새로움과 왠지 세련된 듯한 교회 용어들(개척, 은혜, 은총, 간증, 방언, 신실, 주일, 달란트...), 꽤나 이국적으로 느껴졌던 교회의 부활절 같은 행사들에 매료되어 자발적으로 교회를 다녔다. 개화기를 맞아 제 발로 신식 학교를 걸어간 듯한 마리아, 에스더들의 마음으로.
자발적 개신교 신자였던 나는 우리 집에서 홀로 종교를 가진 사람이었다. 엄마는 교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영어 캠프나 행사를 마음에 들어 했고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모태신앙이 아닌 채로 교회를 다니며, 초등부 신자들의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까지 알고 있는 전도사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주보를 모으고, 헌금을 했다. 그때 전도사는 아이들에게 태권도 대회와 예배일이 겹치면 예배를 나와야 한다는 파격적인 가르침을 주었고, 하나님이 고작 그런 걸로 삐지실까 의문이었지만 설교의 내용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의 관심은 주보 모으기, 성경 필사와 같은 얼마나 내가 신실한 어린양인가 보여줄 수 있는 행위에 국한되었다.
특히 방언은 나를 가장 흥분하게 하는 매력적인 리추얼이었고, 모태신앙이 아닌 내가 증명할 수 있는 충성심의 증거였기에 나도 열심히 방언 기도를 올렸다. 물론 오래가진 않았지만...

다시 지구촌으로 돌아가자면, 큰 이모는 친정인 외할머니 댁에 와서도 그 동네의 교회를 찾아 예배를 가는 신실한 사람이었고, 나도 이모를 따라 일요일에 파주 시골 교회에 갔다. 체육관보다 조금 작은 교회의 예배실에서 교회 의자에 앉아 목사를 바라보고 있으면, 목사의 머리 언저리쯤에 지구촌 교회라는 교회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나는 파주 속 깡촌 동네의 시골에서(정말 시골이었던 게, 가는 길에 계곡이 나와서 계곡을 건너갔다) 지구촌이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다는 게 느낌이 참 그랬다. 굳이 따지자면 지구보다는 촌에 가까운데, 지구촌이 아니라 촌지구 교회여야 하지 않을까. 그 교회의 목사가 한 설교는 ‘거룩함‘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내용이 인상 깊다. 목사는 어린 시절 거룩하다는 느낌에 대해 피상적으로 어렵고 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마치 전화를 받아도 할렐루야라고 하고 새끼발가락을 문지방에 찧어도 할렐루야라고 외칠 것 같은 느낌이라고. 그런데 그는 어떤 이유로 그런 거룩함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그 거룩한 사람이 어땠는지는 휘발되어 버렸고 발가락이 찧든 말든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사람의 이미지만 남았다.



이제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에게 기도의 어느 대목에서 할렐루야나 아멘을 외쳐야 하는지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으로 남았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달달 외워도 안 되는 것이다. 전에 어떤 기획자들과 나눈 얘기 중 한 작가의 어머니가 무당이어서 그것에 관한 작업을 했다는 것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것 또한 아비투스가 아니냐며 세습된 모든 정신적 자산에 대해 부러워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열심히 부활절 달걀을 만들고, 성경 필사를 했던 것도 내게는 없는 크리스천이라는 아비투스를 부여받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흐른 뒤 운동권 명문대생 부모나 미국에 있는 고모와 같이 알아볼 수 있는 유형의 것으로 변해 마주하게 되었고 역시 눈이 마주치고 나면 왠지 분하다. 나를 설명할 필요 없는 나의 배경에 나는 여전히 집착한다. 그래서 열심히 정신과를 다니며 끝없이 나에 대해 탐구하는지도 모른다.

친구 J양이 내게 말했다.


"언니.. 언니는 언니한테 관심이 너무 많아...!"


하지만 그런 나에 대해 알게 되어 난 또 기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