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O와의 메일 중 어린이날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는 매우 두려웠다. 분명 서울의 어느 곳이든 바글바글하겠지.
녹사평으로 향하며 벌벌 떨었다.
이게 웬걸 다들 롯데월드에 갔나 봐.
생각보다 한산한 해방촌과 녹사평의 거리를 보며 마스크 없이 시원한 먼지와 공기를 마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린 이미 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주요 레저인 식사를 끝냈으니 이제 도시의 갈 곳은 카페뿐이다. 하지만 이미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가 들려있는걸.
대충 네이버 지도의 녹지를 보고 우리는 걸었다. 그런데 가도 가도 공원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 거대한 공원에 들어가려면 사십 분을 돌아서 걸어가야 했다.
결국 우리는 가까운 전쟁기념관으로 일단 가보기로 했다. 전쟁 기념관의 분수 주변엔 많은 어린이들과 어린이들의 보호자가 있었고, 앉을 곳은 없었다. 전쟁 기념관과 연결된 계단 끄트머리가 분수랑 닿아있었고 아무도 없었기에 우리는 거기 앉기로 했다. 아름다운 전쟁 기념관의 구조물 천장 돔 안쪽엔 아름다운 벽화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전쟁화였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폭탄이 터지고 있는 상황인 듯했다. 멀리서 아름답게 느껴진 조형적 패턴은 가까이서 보니 격투기의 형태와 폭발의 상황을 묘사한 부조였다.
아 맞다 전쟁기념관이었지.
War Memorial of Korea. 어째서 기록, 기억이 기념까지 나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전쟁을 기념하기 위한 건축들은 제법 아름답고 탁 트여있었다. 그 트여있음은 분수의 구조적 단순함에서 어린이들이 있는 어린이날 풍경의 단순함으로 이어져있었다. 분수를 보며 더 현대 서울에의 분수를 볼 때처럼 탄성을 내지 않는다. 졸졸졸 물을 뿜는 분수. 분수의 규모에 비해 물줄기는 굉장히 소박했다. 그런데 얕은 물 밑으로 손만 뻗으면 잉어의 비늘이 닿을 만큼 얕게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