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개인전을 지내고 또
2024년 1월
김슬기 작가노트
첫 개인전 《SF산신할머니》에서는 미디어에서 관습적으로 보여져왔던 ‘아시아성'에 주목하여 세계관을 만들었다. 영상과 함께 세계관 속 주인공이 사용하는 무구를 아크릴로 만들어 유물 조각으로 보여지게끔 연출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미디어 속의 이미지보다 실재하는 조각을 만드는 유희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두번째 개인전 《Chunky Totem Series》에서는 앞서 보여주었던 세계관을 이용하여 가상의 유물 조각 연작을 제작하였다. 아크릴, MDF, 경석고 등 산업재료로써 자주 쓰이는 재료를 사용하며 유물로 짐작되는 옛스럽고, ‘아시아적'인 이미지의 조각에 근현대적 이미지가 함의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의 유의미함을 깨달았다.
두 번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도시의 거리를 걷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특히 재료 구입과 작품 가공을 위해 을지로, 문래동 등 서울의 구도심을 거니는 동안 도시에 쌓인 흔적의 연원에 대해 관찰하게 되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새 건물을 짓기 위해 멀쩡한 단층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이였다. 크러셔를 사용하여 건물의 철근을 꼬집어 끌어내고 벽을 부수는 장면은 폭발적인 쾌감을 주었다. 그러나 누군가 살아가는 공간이 한 순간에 해체되는 것은 마음에 약간의 충격을 주었다. 건물 그리고 터전이라는 것은 결국 유지하게끔 하는 ‘힘'의 균형에 따라 달려있다는 깨달음은 도시 개발에 대한 헛헛한 감상을 주었다. 그 허무함에 대해 돌아보자면 그 마음은 조각 행위에 대한 일종의 모욕처럼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조각이 스스로 지탱해내기 위해서는 조각가의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 무탈히 서있는 하나의 덩어리를 부수는 것은 마치 조각의 의지를 꺾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번째 개인전 《City Recipe》에서는 위의 과정에서 얻은 사유를 표현하기 위하여 도시에 방치된 건물 앞 조형물, 재개발 후의 널부러진 철근, 공사를 위해 막아놓은 포장 천, 방치된 구도심의 건물 타일, 꾸밈을 위한 것인지 훼손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반달리즘 그래피티 등 구도심의 흔적을표현하려 하였다. 비록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관찰하고 여행하며 떠올린 생각이였지만 청주에서의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청주의 구도심에도 서울의 구도심과유사한 타일 패턴의 낡은 건물들이 있었으며 서양 근대양식을 어설프게 모방한 건물의 꾸밈들에서 한국의 ‘도시화’에 대해 생각했다. ‘시골’을 제외하면모두가 도시이며 혹은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시골인 한국에서의 도시에 대해 말이다.
한편 청주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에서 작업 외에도 가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레지던시에서 자주 교류하던 작가들과 함께 일상을 나누고 전시를 계획하게 되었고, 조주리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전시 《고고학:Today wastoday》를 열게 되었다. 네명의 작가와 한명의 큐레이터가 함께 갤러리 공간을 보기 위해 차량 하나로 이동하며 각자가 가진 서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였다. 우연히 모두 광역시에서 서울에 모인 경험, 위성도시와 신도시에서의 경험 등 서울을 가로질러 교차되는 우리의 이야기들은 나에게 즐겁고 의미있는 기억이다. 서울 토박이인 나의 모친의 구술과 오버랩되며 기록되지 않았거나 기록될 가치가 없는 도시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어떤 건물이나 기관의 연혁과 계보가 아닌 출처를 파악할 수 없는 흔적들과 연원을 알 수 없는 우습거나 비참한 조형들(누군가는 피식민지의 서구화를 쫓는 근대조형이라 부르는)에서 도시 사람들의 삶을 느낀다. 흔히 전후 세대들이 말하는 ‘먹고 사느라 정신없었던’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희미한 기억들의 조합으로 도시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동안 해왔던 세 개인전은 아마도 수많은 세계의 이미지 조각 더미에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을 나열하는 과정이였을지 모른다. 내가 보고 자랐던, 도시와 미디어 저변에서 흔히 보여지는, 현대인들이 만들어냈지만 왜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그런 방치된 오랜 조각(갈라져서 나온 물건)들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 그런 조각들은 마치 조각(雕刻)처럼 보이기도 하다. 아무도 기념해주지 않고 아무도 위용을 바라봐주지 않지만 충분히 인간사와 공간사를 기념하고 기억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조각이다.
시간이 지나 젊은 세대들에게 발굴된 City Pop이라는 장르가 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의 수입이 금지되어 있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였던 애시드 재즈와 어덜트 록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한국에도 시티팝과 유사한 형태의 음악들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전시를 기획하며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인하대학교 김은영 교수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학회에 게재한 논문에 의하면 시티팝에서 묘사하는 도시는 공간으로 물신화되기 보단 코스모폴리탄으로서 서구의 최첨단 ‘세계도시’와 동일시할 만한 미적 향유 혹은 페티시즘의 대상으로서의 도시였다고 서술한다. 도시는 내가 보는 미디어가 부유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많은 이들이 선망하고 지향하는 유토피아고 한편으론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통로이기도 하며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이라는 곳의 문화를 가장 한국의 시선으로 잘 보여주는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다.세계 속의 서울, 아시아의 도시가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 도시에 대해 창작물로 보여주고, 직접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