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언니
2026년 4월 23일


며칠 전 학교에서 건조된 재료를 갈아 바인더와 섞어 안료를 만드는 워크샵을 체험했다.
모두가 함께 각자 준비한 재료를 절구에 넣고 빻는 과정은 마치 어린 시절의 놀이터에서 했던 놀이를 연상시켰다.
한 친구는 멕시코인인데, 그 친구는 어릴 적 타코샵 놀이를 했다고 한다. 나뭇잎들을 쌓아 타코처럼 진열을 해놓고 파는 놀이.
나는 그게 너무나 멕시코인답다고 했다.

나는 어릴 적 주로 언니와 나의 책상 두 개가 붙어 만들어 낸 책상 밑 공간을 이불로 가리고 집으로 만들어 노는 놀이를 즐겼다.
나는 주로 엄마 역할이나 아기 역할을 했다. 내가 동네에서 제일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대개 막내나 아기 역할이였다.
모두가 역할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엄마나 아빠, 아이 역을 고를 때 우리 언니는 늘 이상한 역을 골랐다. 시골사람, 가난한 사람, 할머니와 같은, 어쩌면 초대 받지 못한 사람의 역할을 늘 하고 싶어했다.

언니만의 그들에 대한 인식과 판단을 바탕으로 역할극의 군식구 역할을 수행했다. 모두가 주인공을, 어쩌면 평범함을 꿈꾸는 세계에서 언니는 늘 비천하거나 혹은 소외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역을 즐겼다. 그렇다고 언니가 늘 비범한 어린이였던 것은 아니다.

승부욕이 지나쳐서 지는 것이 싫어 게임을 즐기지 않았던 나와는 달리, 언니는 어린 시절 많은 게임을 즐겨왔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언니가 슈팅 게임이나 액션 게임보다는 잔잔한 퀘스트가 가득한 롤플레잉 게임을 늘 했다는 것이다. 언니는 반복되는 끝없는 미션-버섯 30개 캐오기, 편지를 옆 마을 이장에게 전달하기-등과 같은 시시한 미션들을 반복하는 게임을 오래 해왔다.
심지어 잘 알려진 메이저 게임도 아닌 ‘듣보잡’ 게임을.
나는 그것이 그 사람의 성질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했다. 미션이 주어지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편한 사람.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내는 언니의 성실함과 내구성은 롤플레잉 게임으로 단련되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비범함이 평범함을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 온 이후 언니와 나는 예전보다 자주 통화하게 되었다. 언니는 나의 일상에는 큰 관심이 없으며 주로 자신의 고민이나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이에 대해 나도 큰 불만은 없다.
얼마 전 언니가 뜬금없이, 자신이 엄마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딸일 거라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자신은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큰 이모가 엄마에게 ‘슬기는 참 유별났지’라고 말한 것과 대비되는 말이다.
언니는 문득 ‘엄마 놀이’에서 시골 사람 역을 수행하기 위해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했던 자신을, 엄마가 연기 학원에 보내주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했다고 한다. 언니와 나는 언니의 비범함을 안다. 그리고 우리의 평범함을 안다.
언니는 늘 집에서  순하고 착한 아이, 얌전한 아이였고 나는 꼴통,유별난 아이였다. 물론 나는 이 평가에 대해 은근 우쭐해해왔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반대값으로 여겨지는 자매의 숙명 속에서  나는 왠지 울적해졌다.

특별함, 유별남, 평범함, 평이함.

엄마가 꾼 언니의 태몽에서(나의 단독 태몽은 없다. 이 사실이 날 울적하게 만든다.) 나와 언니는 운명 공동체로서, 쌍둥이가 아니라 두 살 터울임에도 불구하고, 한 바구니의 감자 두 알로 점지되었다.
감자는 크게 분질 감자와 점질 감자로 분류되는데, 한국은 주로 찜과 국물 요리를 위한 점질 감자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 중 누가 어떤 감자였을지 모른다. 혹은 같을지도.

네덜란드의 수퍼마켓에는 수많은 종류의 감자들이 진열되어 있다. 어쩌면 우린 시시한 감자가 아닐지도 몰라.